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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지분과 자본구조

같은 돈을 조달해도 창업자 지분은 두 배 넘게 갈린다

3년간 필요한 자금과 기업가치가 똑같아도, 정부자금·대출·투자를 어떤 순서로 쓰느냐에 따라 최종 창업자 지분이 81%가 되기도 36%가 되기도 합니다.

자금 계획을 세울 때 대부분 얼마가 필요한가를 먼저 계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3년 뒤 창업자 지분율을 갈라놓는 것은 금액이 아니라 어떤 순서로 조달했는가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순서만 바꿔 계산해 보면 차이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조건을 고정하고 순서만 바꿔봅니다

세 회사 모두 자금 소요와 기업가치가 동일하다고 가정합니다.

1년차 2년차 3년차
필요 자금 5억 10억 20억
기업가치 10억 50억 200억

아래 계산은 모두 투자 후 기업가치(post-money) 기준입니다. 기업가치 50억에 10억을 투자받으면 새 투자자가 20%를 갖고 기존 주주 전체가 80%로 줄어드는 방식입니다.

경로 A — 처음부터 투자로만

조달 방법 창업자 지분율
1년차 투자유치 5억 50%
2년차 투자유치 10억 40%
3년차 투자유치 20억 36%

경로 B — 초기에 대출을 쓰고 이후 투자

조달 방법 창업자 지분율
1년차 대출 5억 100%
2년차 투자유치 10억 80%
3년차 투자유치 20억 72%

경로 C — 정부자금 먼저, 대출, 그다음 투자

조달 방법 창업자 지분율
1년차 정부자금 5억 100%
2년차 대출 5억 + 투자유치 5억 90%
3년차 투자유치 20억 81%

36%와 81%. 자금 소요도 같고 기업가치도 같은데 최종 지분이 두 배 넘게 갈립니다.

왜 이렇게 벌어지는가

이유는 하나입니다. 가장 싼 시점에 지분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1년차 기업가치는 10억입니다. 이때 5억을 투자로 받으면 회사의 절반을 넘깁니다. 같은 5억을 3년차에 받으면 200억 가치이므로 2.4%만 나갑니다. 같은 금액인데 대가가 20배 넘게 차이 납니다.

초기 지분이 비싼 이유는 그때가 회사 가치가 가장 낮은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칙은 단순합니다.

기업가치가 낮을 때는 지분을 내주지 않는 돈을, 기업가치가 오른 뒤에 지분을 내주는 돈을 쓴다.

그렇다고 대출이 항상 답은 아닙니다

경로 C가 숫자만 보면 가장 좋아 보이지만, 각 조달 수단에는 숫자에 안 나오는 비용이 있습니다.

대출은 갚아야 합니다. 투자금은 회사가 잘못돼도 갚지 않지만 대출은 남습니다. 매출이 아직 없고 언제 날지 모르는 단계에서 상환 일정이 걸리면, 데스밸리 구간에서 회사가 먼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대표 개인 연대보증이 붙는 경우라면 위험은 회사 밖으로도 번집니다.

정부자금은 시간을 씁니다. 지분 희석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싼 돈이지만, 지원서 작성부터 정산과 보고까지 대표의 시간이 들어갑니다. 그 시간의 기회비용을 계산해 봐야 실제 수지가 나옵니다. 이 계산은 정부지원사업, 받을 것과 거를 것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투자는 돈 외의 것을 함께 가져옵니다. 좋은 투자자는 자금뿐 아니라 고객, 채용, 다음 라운드 연결을 함께 줍니다. 지분을 아끼려다 이 연결을 놓치면 성장 속도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지분율만 최적화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지금 회사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보고 고르는 것이 정답입니다. 돈만 부족하면 대출과 정부자금이, 돈과 연결이 함께 부족하면 투자가 맞습니다.

실무에서의 순서

정리하면 대략 이런 흐름이 됩니다.

  1. 가장 먼저 지분도 상환 의무도 없는 돈 — 정부 지원사업, 각종 지원금
  2. 그다음 상환 의무는 있지만 지분이 없는 돈 — 보증기관 연계 대출, 정책자금
  3. 기업가치가 오른 뒤 지분을 내주는 돈 — 엔젤, 벤처캐피털
  4. 매출이 나기 시작하면 다시 지분 없는 돈 — 매출채권 유동화, 운전자금 대출

3번 안에서도 순서가 있습니다. 회사가 아직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단계라면 재무적 투자자가, 제품과 고객이 자리를 잡은 뒤라면 전략적 투자자가 더 맞습니다. 이 판단은 SI와 FI, 누구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나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지분율은 왜 지켜야 하는가

숫자를 지키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지분율이 곧 의사결정권이기 때문입니다.

  • 약 66.7% — 주주총회 특별결의까지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수준
  • 50% + 1주 — 보통결의를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어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는 수준
  • 20% 안팎 — 이사회 의석을 확보한 경우 방어가 가능한 수준

경로 A처럼 3년 만에 36%가 되면, 그다음 라운드 한 번에 과반이 무너집니다. 회사가 잘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려워졌을 때 방향을 정할 권한이 남아 있는가가 갈립니다.

자금 계획을 세우기 전 점검 목록

  • 앞으로 3년간 필요한 자금을 연도별로 나눠 적었는가
  • 각 시점의 예상 기업가치를 적어봤는가
  • 지분을 내주지 않고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했는가
  • 대출을 쓴다면 상환 일정이 현금흐름과 충돌하지 않는가
  • 연대보증 조건이 붙는지 확인했는가
  • 3년 뒤 예상 지분율을 세 가지 경로로 계산해 봤는가
  • 그 지분율에서 의사결정권이 남아 있는가

마지막 두 항목은 표 하나만 그리면 끝나는 일인데 대부분 하지 않습니다. 한 번 계산해 두면 투자 제안을 받을 때마다 판단 기준이 생깁니다.


지분은 한 번 나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금이 급한 시점에는 조건을 따질 여유가 없어서, 결국 가장 불리한 시점에 가장 비싼 지분을 파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걸 피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자금이 필요해지기 전에 순서를 미리 정해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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