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사업, 받을 것과 거를 것
지원금은 지분 희석이 없는 돈이지만 공짜는 아닙니다. 실제로 나가는 비용을 계산해 보고 지원할 사업을 고르는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창업 초기에 정부지원사업은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지분을 내주지 않아도 되고, 갚지 않아도 되는 자금이 대부분이며, 선정 이력 자체가 다음 단계에서 신뢰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기 팀 중에는 지원사업 공고를 찾아 지원서를 쓰는 일이 사실상 주업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상태가 위험한 이유는 그 시간이 회계상 비용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이 나가지 않으니 손해처럼 보이지 않지만, 초기 회사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현금이 아니라 대표와 핵심 인력의 시간입니다.
먼저 비용을 계산해 봅니다
지원사업 한 건에 실제로 들어가는 것을 적어 보면 생각보다 큽니다.
- 공고 분석과 지원서 작성
- 사업계획서 양식에 맞춰 내용을 다시 배열하는 시간
- 발표 평가 준비와 참석
- 선정 후 협약, 중간보고, 정산, 최종보고
- 지정된 회계 처리와 증빙 관리
특히 마지막 두 항목은 선정된 뒤에 계속 발생합니다. 지원금 3천만 원을 받았는데 대표가 두 달간 정산과 보고에 매달렸다면, 그 두 달에 하지 못한 영업과 개발을 함께 계산해야 실제 수지가 나옵니다.
계산 방법은 간단합니다. 투입 시간 × 그 시간의 기회비용을 지원금에서 빼 보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여전히 플러스라면 좋은 거래이고, 마이너스라면 그 사업은 거르는 편이 낫습니다.
거르는 편이 나은 경우
사업 방향을 바꿔야 지원 자격이 되는 경우. 공고의 지원 분야에 맞추려고 사업 설명을 억지로 비트는 순간, 선정되더라도 협약서에 그 내용이 들어갑니다. 이후 1년 동안 하지 않을 일을 보고서에 계속 써야 합니다.
지원금 대비 관리 부담이 큰 경우. 금액이 작은데 정산 요건이 까다로운 사업이 있습니다. 금액만 보지 말고 정산 방식과 보고 주기를 함께 봐야 합니다.
용도가 지금 필요와 어긋나는 경우. 장비 구입에만 쓸 수 있는 자금인데 지금 필요한 것이 인건비라면, 받아도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쓰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장비를 사게 됩니다.
지분이나 권리가 걸리는 경우.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지분과 무관하지만, 일부 프로그램은 투자 연계형이거나 지식재산권에 조건이 붙습니다. 공고문의 해당 조항을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받을 만한 경우
지금 어차피 할 일에 자금이 붙는 경우. 이미 채용할 계획이었던 자리에 인건비 지원이 나오거나, 진행하려던 개발에 자금이 붙는 경우입니다. 사업 방향을 바꾸지 않아도 되므로 순수하게 이득입니다.
돈보다 따라오는 것이 큰 경우. 일부 프로그램은 자금과 함께 사무 공간, 멘토링, 투자자 연결, 대기업 협업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부분의 가치가 지원금보다 큰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특히 초기에 투자자를 만날 통로가 없는 팀에게는 연결 자체가 자금보다 유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의 자격 요건이 되는 경우. 특정 인증이나 확인을 받아야 그다음 프로그램이나 세제 혜택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경우 단건이 아니라 경로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지원서에서 반복해서 보는 문제
심사 자리에서 자주 갈리는 지점은 대체로 같습니다.
공고를 안 읽고 쓴 지원서. 평가 항목과 배점이 공고에 나와 있는데 지원서가 그 구조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가자는 항목별로 점수를 매기므로, 평가 항목 순서대로 답이 배치되어 있으면 점수가 잘 나옵니다. 좋은 사업이라도 찾기 어렵게 써두면 손해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한다고 쓴 지원서. 분량을 채우려고 계획을 늘리면 실행 가능성이 낮아 보입니다. 기간 안에 실제로 끝낼 수 있는 범위로 적는 편이 신뢰를 얻습니다.
숫자에 근거가 없는 지원서. 목표 매출이나 사용자 수가 나오는데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설명이 없으면 그 계획 전체가 희망으로 읽힙니다. 이 문제는 매출 추정을 동인으로 분해하는 법에서 다룬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선정된 뒤에 준비할 것
지원사업은 선정이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미리 준비해 두면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 협약서의 의무 사항과 보고 일정을 달력에 먼저 넣습니다
- 증빙 규칙을 확인하고 지출 시점부터 정리합니다. 나중에 몰아서 맞추는 것이 가장 오래 걸립니다
- 집행 가능한 비목과 불가능한 비목을 팀에 공유합니다
- 담당자를 정합니다. 대표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앞서 계산한 기회비용이 그대로 발생합니다
지원 전 점검 목록
- 투입 시간의 기회비용을 계산했고 그래도 남는가
- 사업 방향을 바꾸지 않고 지원할 수 있는가
- 자금 용도가 지금 필요와 맞는가
- 정산 방식과 보고 주기를 확인했는가
- 지분·지식재산권에 걸리는 조항이 없는가
- 자금 외에 따라오는 것(공간·연결·인증)의 가치를 따져봤는가
- 선정 후 관리를 맡을 사람이 정해져 있는가
정부지원사업은 잘 쓰면 초기 회사의 시간을 벌어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다만 지분 희석이 없다는 이유로 비용이 없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받을 것과 거를 것을 나누는 기준만 세워두면, 지원사업이 본업을 밀어내는 상황은 피할 수 있습니다.
기준은 하나로 요약됩니다. 그 사업이 없었어도 했을 일인가. 그렇다면 받을 만하고, 그 사업 때문에 새로 만드는 일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