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entures
인사이트/투자유치와 IR

IR 자료는 내용보다 순서가 중요하다

심사역은 자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습니다. 앞 세 장에서 계속 볼지가 갈리는데, 많은 자료가 그 자리를 회사 연혁으로 채웁니다.

같은 사업을 같은 내용으로 설명해도 반응이 갈립니다. 자료의 완성도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읽는 순서가 다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사역은 하루에 여러 건의 자료를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것이 아니라 앞부분에서 "이걸 계속 볼 이유가 있나" 를 먼저 판단하고, 그 판단이 선 뒤에야 뒤를 읽습니다. 그런데 많은 자료가 가장 비싼 그 자리를 회사 연혁과 팀 소개로 채웁니다.

앞 세 장에서 답해야 하는 것

첫 세 장에서 세 가지가 서 있어야 합니다.

  1. 무슨 문제를 푸는가 — 누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한지 구체적으로.
  2. 어떻게 푸는가 — 제품이나 서비스가 그 불편을 어떻게 없애는지.
  3. 왜 지금인가 — 이 문제가 왜 하필 지금 풀리는지.

세 번째가 가장 자주 빠집니다. 좋은 문제는 대개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창업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면 "그동안 아무도 못 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라는 의심이 남습니다. 규제가 바뀌었다든가, 비용 구조가 달라졌다든가, 사용자 행동이 옮겨갔다든가 하는 변화를 짚어야 합니다.

권하는 순서

1. 문제        누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한가
2. 해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없애는가
3. 왜 지금     무엇이 달라져서 지금 가능해졌는가
4. 작동 증거   실제로 쓰이고 있다는 숫자
5. 시장        이 문제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6. 사업 모델   어떻게 돈을 버는가
7. 경쟁        왜 우리가 이기는가
8. 팀          왜 우리가 이 문제를 풀 사람인가
9. 재무 계획   앞으로의 숫자와 그 근거
10. 요청       얼마를 어디에 쓸 것인가

시장 규모를 4번이 아니라 5번에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장이 크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면 "그래서 당신들이 뭘 하는데?"라는 질문이 앞서게 됩니다. 반대로 문제와 해결을 먼저 보여준 뒤 시장을 말하면 같은 숫자가 근거로 읽힙니다.

팀은 왜 뒤에 두는가

팀 슬라이드를 맨 앞에 두는 자료가 많습니다. 이력이 좋으면 유리하다고 생각해서인데, 앞에 두면 이력만 남고 사업은 안 남습니다.

팀은 "왜 하필 이 사람들이 이 문제를 푸는가" 를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문제와 해결을 먼저 보여준 다음에 나와야 "아, 그래서 이 사람들이구나"로 연결됩니다. 순서만 바꿔도 같은 이력이 훨씬 설득력 있게 읽힙니다.

자료는 두 벌 만듭니다

같은 자료를 발표에도 쓰고 메일로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두 상황은 요구가 다릅니다.

  • 발표용 — 슬라이드는 말의 보조입니다. 글자를 줄이고 한 장에 메시지 하나만 둡니다.
  • 전달용 — 대표가 옆에 없는 상태에서 혼자 읽힙니다. 문장을 붙여 설명이 자립하게 만듭니다.

전달용을 발표에 쓰면 청중이 슬라이드를 읽느라 발표를 안 듣고, 발표용을 메일로 보내면 받은 사람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 벌을 만들고 각각으로 손보는 편이 낫습니다.

숫자는 근거와 함께 둡니다

재무 계획 장에 결과 숫자만 크게 적어두면 반드시 "이 숫자 어디서 나왔습니까"라는 질문이 옵니다. 그 자리에서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답이 길어지면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핵심 가정을 슬라이드 안이나 부록에 함께 두는 편이 낫습니다. 추정을 어떻게 쌓는지는 매출 추정을 동인으로 분해하는 법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명확히 요청합니다

의외로 자주 빠지는 것이 얼마를 요청하는지입니다. "투자 유치 희망"이라고만 적혀 있으면 심사역은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 얼마를 받고 싶은지
  •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항목별 배분)
  • 그 돈으로 몇 개월을 버티고, 그 기간에 무엇을 증명할 것인지

세 번째가 특히 중요합니다. 투자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자금이므로, 이번 라운드로 무엇을 증명해 다음 라운드에 갈 것인지가 서 있어야 합니다.

점검 목록

  • 첫 세 장에서 문제·해결·왜 지금이 서 있는가
  • 시장 규모가 해결 뒤에 나오는가
  • 팀이 문제와 연결되어 설명되는가
  • 실제로 쓰이고 있다는 증거가 앞쪽에 있는가
  • 숫자 옆에 가정이나 근거가 붙어 있는가
  • 요청 금액과 사용처, 그 기간에 증명할 것이 적혀 있는가
  • 발표용과 전달용을 구분했는가

IR 자료를 고칠 때 사람들은 대개 디자인부터 손댑니다. 하지만 자료가 안 읽히는 이유는 대체로 디자인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판단 순서와 자료의 배열이 어긋나 있기 때문입니다. 장 순서를 바꾸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고, 효과는 디자인을 다듬는 것보다 큽니다.

IR투자유치자료작성피칭